[영화감상]The Man from Earth (2007)
영화 낯설게보기 2008/10/15 16:36 |
인생을 아는 친구에게 인생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꼭 보라고 강추한 영화가 바로 당 영화, The Man from Earth이다. 고작 $20,000의 저예산 영화이고 (영화보면, 이 돈도 다 어디다 썼는 지 궁금해질 정도..ㅋㅋ), 특수효과는 물론 장소이동도 없다. 그저 몇 사람이 앉아서 말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체로 이런 영화들은 소극장 느낌을 주어 답답한 느낌을 주지만, 이 영화는 예외다. 그 어떤 영화보다 흡인력이 있다.
영어로 봐서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충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떤 교수가 있었는데, 이 교수가 갑자기 별 이유없이 은퇴를 하고 떠나기로 결정하자, 이사하는 날 동료 교수들이 그를 위해 깜짝 파티를 해 준다. 왜 그만두냐, 어디로 가냐...는 등의 질문을 받다가, 이 요상한 주인공 교수 (이름이 John Oldman이던가)가 자신은 석기시대부터 살아온 크로마뇽인이라고 고백하는 데서 사건은 시작된다.
생물학 교수, 인류학 교수, 고고학 교수, 역사학 교수,...들은 처음에는 장난으로 그냥 소설쓰기를 위한 게임쯤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지만, 이 John이라는 크로마뇽인은 어떤 질문에도 어떤 망설임도 없이 척척 대답을 해내기 시작하는 거다. 알려진 팩트와 그것들간의 논리의 헛점을 찾아 반박할 거리를 찾기 시작하던 사람들은 점점 진지해지고 심지어 하나 둘 조금씩 그의 말을 믿기 시작하게 된다.
아아주 예전에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 자신John을 부족원들은 자기네들의 생명을 빼앗아간다고 해서 쫓겨나기도 하고 (이때 인류학 교수인가가 이게 드라큐라 전설의 모태라고 한다), 콜럼버스와 함께 신대륙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데, 가장 압권인 부분이 종교 얘기를 하면서 자신이 붓따의 친구였다는 거다. 붓따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아서 서구 세계에 전파하게 되었는데, ... 자신이 예수라고 고백하는 부분에서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고, 특히 평생을 기독교에 헌신해온 Edith인가 하는 아줌마는 울음을 터뜨린다.
일이 너무 커지자 John은 지금까지 모두 소설쓰기를 위한 뻥이었다고 하자, 사람들은 모두 안도를 하게되고, Edith는 마치 구원을 받은 사람처럼 기뻐한다. 이러고 끝이 나나 싶었는데... 꽤 괜찮은 반전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흠... 꽤 괜찮은 영화. 이 영화는 "안다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믿고 있는 어떤 "확고한 것들"이란 수많은 다른 가능성이란 것들로 구멍이 송송 뚫린 위태로운 것일 수도 있음을, 그리고 결국 "안다는 것"은 "안다고 믿는 것"일 수 있고, 그리하여 모든 "그것들"은 결국 불가피하게 어떤 "종교적"이거나 "신념"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일 수 있음을, 가장 엄밀하고 객관적인 Science라는 영역의 예를 통해 보여 준다. 그런 면에서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를 극화한 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사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인간의 믿음들로 점철되어 있는 지...
확고한 사실, 혹은 그런 것들에 대한 믿음을 위협하는 어떤 증거들이 쏟아질 때 그것을 계속 쥐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버릴 것인지는 결국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자기랑 같이 커피마시고 밥먹고 농담따먹기 하던 동료가 예수라면,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도 반박할 수 없다면 (물론, 입증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 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자신의 전인생을 헌신한 것이 파산한 회사의 주식처럼 휴지조각이 되었을 때의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말이다.
아무튼 독특한 형식과 참신한 내용,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는 볼만한, 잘 된, 영화다. 앎과 믿음에 대해, 믿음과 설득에 대해, 이미지와 진실에 대해, 시간과 기억에 대해, 감정과 이성에 대해,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말이다.
* 나중에 보니, 스타트렉을 썼던 작가가 거의 30년이 걸려서 쓴 대본이란다. deathbed에서 마무리했다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30년 역작이란다.
** 그 어떤 제스쳐도 쓰지 않고 무심한 듯한 표정과 건조한 말투가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지 처음 알았다. 누군가 나를, 나의 말을 믿게 한다는 건 훌륭한 배우와 관객의 심리전 혹은 기싸움과 비슷한 것 아닐까 이런 생각 잠시. 눈만 클로즈업했을 때, 스크린에서 관객을 제압할 수 있는 배우는 송강호 정도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기싸움이다.^^* 내가 나의 말을 불신한다면 그 어느 누가 나의 말을 믿어 줄 것인가 말이다. 눈에 힘을 주고, 이 우주에 다시 없는 확고한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그렇게 나를 믿게 만드는 것. 그.게.필.요.하.다. 백남준씨도 생전에 말씀하셨다지만...예술이건 뭐건, ...어차피, 일정 부분 이상은...다 사기 아닌가?
***주인공은 자신이 불로장생 불멸의 존재라는 것을 남들에게 들키는 순간 떠나 버린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떠나기로 결심한다는 거다. 엄머, John, 당신의 얼굴은 10년이 지났는데도 하나도 안 변했네요... 바로 이 말이다. 동창회나 경조사때 만난 오래된 친구들에게 습관처럼 쓰는 말인데, 조심해야겠다. 그 친구가 14,000년 전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크로마뇽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없다면 말이다. 그런 결심을 하게 하는 굉장한 영화다.^^
영어로 봐서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충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떤 교수가 있었는데, 이 교수가 갑자기 별 이유없이 은퇴를 하고 떠나기로 결정하자, 이사하는 날 동료 교수들이 그를 위해 깜짝 파티를 해 준다. 왜 그만두냐, 어디로 가냐...는 등의 질문을 받다가, 이 요상한 주인공 교수 (이름이 John Oldman이던가)가 자신은 석기시대부터 살아온 크로마뇽인이라고 고백하는 데서 사건은 시작된다.
생물학 교수, 인류학 교수, 고고학 교수, 역사학 교수,...들은 처음에는 장난으로 그냥 소설쓰기를 위한 게임쯤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지만, 이 John이라는 크로마뇽인은 어떤 질문에도 어떤 망설임도 없이 척척 대답을 해내기 시작하는 거다. 알려진 팩트와 그것들간의 논리의 헛점을 찾아 반박할 거리를 찾기 시작하던 사람들은 점점 진지해지고 심지어 하나 둘 조금씩 그의 말을 믿기 시작하게 된다.
아아주 예전에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 자신John을 부족원들은 자기네들의 생명을 빼앗아간다고 해서 쫓겨나기도 하고 (이때 인류학 교수인가가 이게 드라큐라 전설의 모태라고 한다), 콜럼버스와 함께 신대륙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데, 가장 압권인 부분이 종교 얘기를 하면서 자신이 붓따의 친구였다는 거다. 붓따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아서 서구 세계에 전파하게 되었는데, ... 자신이 예수라고 고백하는 부분에서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고, 특히 평생을 기독교에 헌신해온 Edith인가 하는 아줌마는 울음을 터뜨린다.
일이 너무 커지자 John은 지금까지 모두 소설쓰기를 위한 뻥이었다고 하자, 사람들은 모두 안도를 하게되고, Edith는 마치 구원을 받은 사람처럼 기뻐한다. 이러고 끝이 나나 싶었는데... 꽤 괜찮은 반전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흠... 꽤 괜찮은 영화. 이 영화는 "안다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믿고 있는 어떤 "확고한 것들"이란 수많은 다른 가능성이란 것들로 구멍이 송송 뚫린 위태로운 것일 수도 있음을, 그리고 결국 "안다는 것"은 "안다고 믿는 것"일 수 있고, 그리하여 모든 "그것들"은 결국 불가피하게 어떤 "종교적"이거나 "신념"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일 수 있음을, 가장 엄밀하고 객관적인 Science라는 영역의 예를 통해 보여 준다. 그런 면에서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를 극화한 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사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인간의 믿음들로 점철되어 있는 지...
확고한 사실, 혹은 그런 것들에 대한 믿음을 위협하는 어떤 증거들이 쏟아질 때 그것을 계속 쥐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버릴 것인지는 결국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자기랑 같이 커피마시고 밥먹고 농담따먹기 하던 동료가 예수라면,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도 반박할 수 없다면 (물론, 입증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 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자신의 전인생을 헌신한 것이 파산한 회사의 주식처럼 휴지조각이 되었을 때의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말이다.
아무튼 독특한 형식과 참신한 내용,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는 볼만한, 잘 된, 영화다. 앎과 믿음에 대해, 믿음과 설득에 대해, 이미지와 진실에 대해, 시간과 기억에 대해, 감정과 이성에 대해,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말이다.
* 나중에 보니, 스타트렉을 썼던 작가가 거의 30년이 걸려서 쓴 대본이란다. deathbed에서 마무리했다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30년 역작이란다.
** 그 어떤 제스쳐도 쓰지 않고 무심한 듯한 표정과 건조한 말투가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지 처음 알았다. 누군가 나를, 나의 말을 믿게 한다는 건 훌륭한 배우와 관객의 심리전 혹은 기싸움과 비슷한 것 아닐까 이런 생각 잠시. 눈만 클로즈업했을 때, 스크린에서 관객을 제압할 수 있는 배우는 송강호 정도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기싸움이다.^^* 내가 나의 말을 불신한다면 그 어느 누가 나의 말을 믿어 줄 것인가 말이다. 눈에 힘을 주고, 이 우주에 다시 없는 확고한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그렇게 나를 믿게 만드는 것. 그.게.필.요.하.다. 백남준씨도 생전에 말씀하셨다지만...예술이건 뭐건, ...어차피, 일정 부분 이상은...다 사기 아닌가?
***주인공은 자신이 불로장생 불멸의 존재라는 것을 남들에게 들키는 순간 떠나 버린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떠나기로 결심한다는 거다. 엄머, John, 당신의 얼굴은 10년이 지났는데도 하나도 안 변했네요... 바로 이 말이다. 동창회나 경조사때 만난 오래된 친구들에게 습관처럼 쓰는 말인데, 조심해야겠다. 그 친구가 14,000년 전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크로마뇽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없다면 말이다. 그런 결심을 하게 하는 굉장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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